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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사법

[벌금제] #3 벌금을 내지 못하면 감옥에 간다. 환형유치(換刑留置)

by 최룡 2020. 5. 21.

 

출처 - 오마이뉴스

30일 내에 전액을 내야한다

지난 번에는 총액벌금제의 문제점인 사법불평등과 가난한 이들이 겪는 벌금형의 무게를 재어보았다. 이번에는 벌금형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사람들이 겪는 일들에 대해 얘기해보겠다. 우선 형법 69조다.

형법 제69조(벌금과 과료)

    ① 벌금과 과료는 판결확정일로부터 30일내에 납입하여야 한다. 단, 벌금을 선고할 때에는 동시에 그 금액을 완납할 때까지 노역장에 유치할 것을 명할 수 있다.

② 벌금을 납입하지 아니한 자는 1일 이상 3년 이하, 과료를 납입하지 아니한 자는 1일 이상 30일 미만의 기간 노역장에 유치하여 작업에 복무하게 한다.

당장 몇년 전만 해도 30일 이내에 현금으로 전액 납부해야 했다. 분할 납부나 납부 연기도 가능은 하지만 검사의 '허가'를 받아야 하며 절차도 까다롭다. 지금에야 카드로도 납부가 가능하고 사회봉사로 대체할 수 있음이 많이 알려져있지만, 그렇지 못한 시절이 더 길었다.

벌금형은 심지어 집행유예도 없었다. 봐주는 게 없다는 말이다. 첫 글에서 언급했다시피 3·5의 법칙을 적용받은 최태원, 정몽구, 이건희는 벌금형보다 훨씬 중한 자유형을 받았음에도 교도소에 가지 않았다. 그런데 벌금을 낼 돈이 없는 사람들은? 훨씬 작은 죄를 저지르고 형량도 적음에도 교도소에 간다. 


터무니 없이 적은 노역의 가치, 하루 10만 원

노역을 살게 되면 교도소 안에서 일한 만큼 벌금을 까준다. 2014년 초에 10만 원으로 인상되었고, 그 전에는 5만 원이었다. '하루 일하고 10만 원 벌기가 얼마나 힘든데, 그 정도면 좋은 거 아니냐' 라고 말 할 수 있겠지만 일상생활을 박탈당하고 사회 내 관계도 단절되어야 하며 범죄자라는 낙인까지 찍히면서 하루 10만 원을 벌 수 있다고 하면(심지어 내 돈이 되지도 않는다.) 당신은 하겠는가?

심지어 그 노역도 불평등하다

일당 5억원의 노역으로 비난을 산 허재호 회장의 판결 결과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정되는 관계도. 일당 5억 원의 판결을 내린 장병우 판하는 광주지법장이었는데, 자신의 지역에 연고가 있는 기업인에게 편의를 봐주는 향판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 출처 PD수첩

  게다가 모두에게 평등하지도 않다. 같은 죄에 똑같은 금액을 선고받는데 왜 평등하지 않냐고?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로, 노역장에 유치되는 최장 기간은 3년이다. 최장기간이 1095일이기 때문에, 1일 탕감액을 10만원 씩 따졌을 때 109,500,000원이다.  이게 최저로 따진 금액이니 이 이상의 벌금을 맞았다면 그냥 노역장에 들어가는 게 이득이라는 소리다.

둘째는 하루 유치금액의 책정 문제다. '황제노역'이라는 말을 들어봤을 거다. 과거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이 하루 5억을 탕감받는 구치소 노역을 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있었다. (논란이 왜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난이 일어났어야 하지 싶다.) 이게 어떻게 가능하냐고? 단순하다. 하루 일당은 법관의 재량으로 결정된다. 최대 일수 때문에 그런 것 아니냐고? 그렇게 계산하면 허재호의 벌금은 547,500,000,000원(5,475억 원)이어야 한다. 하지만 허재호가 내야 할 벌금은 249억이었다. 더 웃긴 건, 이 벌금액도 반을 깎아준 금액이다.


다시,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은 여기서도 통한다. 전두환 얘기는 하기 싫은데 나쁜 건 다 전두환이 연관되어있어 안 할 수가 없다. 지난번은 동생이었고 이번에는 아들이니 양해바란다.

전두환의 차남 전재용은 2015년에 탈세 혐의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 벌금 40억 원을 선고받았다. 1년 동안 벌금 1억 4천만 원을 내고 2016년 7월에 노역장에 들어간다. 그러면 보자. 일당 10만 원으로 계산하면 전재용은 38,600일을 있어야 한다. 하지만 전재용은 2019년 2월에 나왔다. 즉 하루 노역 일당이 400만 원이었던 것이다.

이 판결에 대해 문유석 판사는 페이스북에 봐주기가 아닌, 법 규정의 문제임을 지적한 바 있다. 허핑턴 포스트 코리아가 기사화한 이 글도 꼭 한번 읽어봤으면 한다. 무턱대고 유치기간을 늘리는 건 분명 문제가 있다. 다루기로 했지만 다루지 못한 과밀수용을 떠나서도 말이다.


결국 불평등이다

환형유치가 이토록 많은 문제점을 갖지만 그 중 가장 문제인 건 돈 없는 사람들이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다는 거다. 누구는 300만 원이 껌 값이라 내면 그만인데 누구는 300만 원을 빌릴 수도 없어 노역장에 유치되는 현실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다음 글에서는 사례를 바탕으로 '일수벌금제'를 소개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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