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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사법

[벌금제] #4 과속운전 범칙금이 1억 6,700만 원? 소득에 따라 벌금 액수가 다른, 일수벌금제

by 최룡 2020. 5. 25.

과속운전 범칙금이 1억 6,700만 원?

모두가 다 한 번 쯤은 들어본 사례로 시작하겠다. 2002년 휴대폰 제조업체 노키아(블랙베리 핸드폰을 만드는 회사)의 부회장 안시 반 요키는 핀란드 헬싱키의 시속 50km/h 제한 구역에서 약 75km/h로 운전했다가 11만 6,000유로(약 1억 6,700만 원/ 2020.05.25 기준 1억 5,688만 원)의 범칙금 딱지를 받았다. 

이렇게 큰 범칙금이 부과될 수 있었던 이유는 핀란드의 벌금제가 우리나라와 다른 데에 있다. 핀란드에서는 경찰이 위법운전을 적발하면 우선 소득부터 묻는다. 그리고 세무서에 운전자의 소득과 재산을 확인한다. 그 후 월급의 14분의 1 정도(2019년 9월 기준/ 핀란드 대사관 2005년 글 기준 60분의 1)를 부과한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소득을 속이는 경우 추가로 범칙금도 아닌 벌금을 내야 한다.

출처 - 카카오 1boon 컨텐츠

징벌의 평등이 아닌 징벌 효과의 평등

핀란드는 같은 잘못을 한 사람들을 단순히 똑같이 처벌하지 않고 같은 고통을 느끼게끔 처벌한다. 앞서 언급했듯 우리나라처럼 총액벌금제를 시행하는 경우 같은 잘못을 했을 때 겪는 고통이 다르다. 두 사람이 음주운전을 했다고 가정해보자. 양 쪽 모두 벌금 500만 원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한 쪽은 부자라 껌값이고, 다른 한 쪽은 월 소득이 200만원이 안 되는지라 3달치 월급을 전부 벌금을 납부하는 데 써야 한다.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논리는 '역차별'이다. 같은 가치의 돈이고 자신이 노력해서(실제로 노력했는지, 잘 타고났는지는 모르겠다만) 번 돈인데 같은 잘못을 한 가난한 사람보다 왜 자신이 돈을 더 내야하냐는 거다. 그러면 역으로 물어보겠다. 같은 잘못을 했는데 왜 가난한 사람만 더 고통을 받아야 하나? 가난해서? 가난이 사법의 불평등을 합리화하는 기제로 작용할 수는 없다.

결국 이는 징벌의 평등과 징벌 효과의 평등 중 어느 것이 앞서느냐의 문제다.  범죄와 관련 없이 축적해 온 부에 따라서 양형 상의 불리함이 적용된다는 점에서 역차별 가능성이 존재한다고는 할 수 있다. 다만 나는 부자들이 돈을 더 뺏겼을 때 느낄 수 있는 억울함, 불합리함 등 보다는 가난한 사람들이 같은 잘못을 하고도 보다 더 큰 고통을 느껴야 하는 점이 더 불합리하다고 본다.


형벌의 본질적 기능

이에 형벌의 본질적 기능을 침해한다는 비판이 있다. 객관적인 행위의 결과나 불법의 정도가 아닌 형벌의 효과에만 관점을 집중하기 때문이다. 이 말을 따져보기 전에 우선 형벌의 본질이 무엇인지 확인해봐야겠다. 우선 형벌론에서는 형벌의 목적을 세 가지로 구분한다. 

첫째로 응보형주의다. 형벌의 절대주의와 절대성에 집중하며, 범죄에 대한 응보로서 이해한다. 응보 그 자체가 목적인 것이다. 다음으로 목적형주의다. 범죄로부터 사회를 방어, 보호하며 장래의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이해한다. 목적형주의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눠지는데, 일반예방주의범죄 예방의 대상을 일반인에 둔다. 즉 일벌백계다. 이에 반해 특별예방주의범죄 예방의 대상을 범죄인에 두고 다시는 죄를 범하지 않도록 범죄인을 재사회화 함에 있다. 마지막은 결합설이다. 양 측을 다 취한다. 

어느 쪽이 합리적인가?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응보형주의는 유토피아에서나 통용될 수 있는 사상이다. 일반예방주의는 시민들을 겁준다는 측면에서 사법의 본래 목적과는 차이가 있다. 그렇기에 나는 특별예방주의가 가장 합리적이라고 본다. 물론 강력범죄자 또는 사회에 나오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후에 자세히 다루겠지만, 우리나라에서 범법자 되기 참 쉽다. 김수영 시인은 1960년에 <김일성 만세>라는 시를 썼다. 진짜 김일성 만세를 외치는 건 아니고 국가보안법이 인정된 데에 실망해 쓴 것이다. 당장 60년대 후반만 해도 내가 리뷰를 쓴 책(혹은 쓸 책)을 읽기만 해도 잡혀갔다. 국가보안법 뿐 아니라 '경범죄처벌법'은 더하다. 길거리에 허가 없이 붙어있는 광고물들, 어딜가나 나뒹구는 담배꽁초, 놀러간 계곡에서 주운 돌, 노숙자의 구걸행위 등... 나열하기에도 수없이 많고 또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것들이 사실 다 불법행위다. 벌금은 크지 않지만 전과자가 된다.

이런 경우들에도 전부 응보형주의, 일반예방주의에 방점을 찍는 것이 합당할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기본적으로 다들 잘못된 행위인 건 맞지만, 단순 행정처벌도 아니고 무턱대고 범죄자를 만드는 건 옳지 않다. '잘못했으면 벌을 받아야지'가 아니라 '이게 왜 잘못이냐'를 따질 줄 알아야 한다.


결국은 가치싸움이다

이 얘기 저 얘기 다양하게, 또 얕게 했지만 결국 모든 게 그렇듯 가치싸움이다. 징벌의 평등이 우선인지 징벌 효과의 평등이 우선인지를 따지기 전에 사람들이 어떻게 느끼느냐가 더 중요하다. 같은 잘못을 했는데 저 사람은 감옥에 안 가도 되고, 나는 가야한다면? 부자들이 느끼는 억울함이 우선인지 가난한 자가 느끼는 박탈감, 불공정, 불평등이 먼저인지에 대해 우선 얘기해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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