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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사회 · 문화

[사회·문화] #1 홍세화 - 결: 거칢에 대하여

by 최룡 2020. 5. 13.
 

결 : 거칢에 대하여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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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 거칢에 대하여

2020년 작. 홍세화 저. 한겨레출판 발매. 값 15,000원


 

<결: 거칢에 대하여> 표지 - 출처 예스 24

 

'달걀로 바위 치기'라고 한다. 짱돌을 던져봐야 소용없다는 뜻이겠다. 하지만 낙숫물에 파이지 않는 돌 없고 나무뿌리에 틈을 열지 않는 바위 없다. 우리는 '바위는 확실히 부서진다'는 확실성이 아니라 '바위도 부서질 수 있다'는 가능성에 주목하고 행동해야 한다. … 자유인은 언제나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가는 길이 어려운 게 아니라, 어려운 길이므로 우리가 간다."

세 번째 책 리뷰는 홍세화 선생님의 사회비평 에세이 <결: 거칢에 대하여>다. (칢의 폰트가 상당히 거슬린다.) 책 전문 블로거가 될 건 아닌데 평소 쉴 때 하는 일이 게임 조금 하다가 질리면 음악 들으면서 책 읽는 게 전부라 아직은 크게 포스팅할 주제가 없으니 이해해주시면 좋겠다. 그렇다고 평생 읽은 책들의 리뷰를 다 쓸 건 아니고, 올해 읽은 것들만 정리한 후 앞으로 읽을 책들만 올리려 한다.

홍세화 선생님은 꽤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벌금을 내지 못해 감옥에 가야하는 사람들에게 무담보, 무이자로 대출을 해주는 '장발장은행'의 은행장이고 진보신당의 대표이기도 했다. 남민전 사건으로 난민이 되었을 때는 파리에서 택시운전사를 하기도 했다고 한다. 상당히 다채롭다.

작년에 우연히 홍세화 선생님의 강의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회의하는 자아'를 키워드로 한 강의였다. 이 키워드는 이번 책에도 많이 녹아 있었다. (제2부의 부제가 '회의하는 자아'다.) 이런 이유로 강의 직후 홍세화 선생님의 책을 한 권 읽었고 올해 신간이 나왔다고 해 읽었다. 나는 꼭 한 권 사서 읽어보기를 권한다. 이제 리뷰를 시작하겠다.


1부 자유, 자유인

1부에서는 자유에 대해 이야기한다. 인상 깊은 부분은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인용해 자기 형성의 자유를 내던지고 편하게 사는 노예로 살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고 꼬집은 부분이다. '지배 세력이 앞장선 경쟁지상주의, 물신숭배에 대해서도 "아니오!" "멈춰!"를 말하는 대신 열심히 뒤따랐다.' (49p)는 문장이 특히 와 닿았다. 그러면서 각 개인들의 자유로운 주체화와 사회 민주화는 줄탁(줄탁동기)의 관계이며 이때 병아리가 껍데기 안쪽을 쪼는 줄이 어미 닭의 탁에 우선한다는 점을 덧붙인다고 썼다.

물질과 권력이 우선인 시대에 그를 거부하고 자유를 위해 더 낫게 패배하자는 말일 테다. 책 커버의 '홍세화가 말하는 홍세화'에 보면 끝까지 사병으로 남겠다는 말이 있다. 본인을 사병으로 '지어' 조금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기꺼이 패배하겠다는 뜻인 듯하다. 서문의 마지막 문단에 설령 그 후배가 소수도 아닌 극소수에 지나더라도, 후배를 조금 더 낫게 패배하는 자유인이 되게 하겠다는 안간힘이라는 말과도 연결된다. 

 

신영복 선생님의 글씨 - 출처 사단법인 더불어숲 페이스북

 

2부 회의하는 자아

'완성단계에 이른 사람들'이라는 소제목으로 2부는 시작된다. 사실 설득이라는 말을 들으면 그게 가능한가 싶다. 사람들은 내 의견을 들으려고 하지도 않거니와 설득당할 것 같으면 '난 몰라, 네가 알아서 해!'라고 말하곤 한다. 선생님은 이 부분을 지적한다. 이런 생각은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는 거다. 자신의 생각이 아닌 것들로 자신을 완성했으니 당연히 변할 여지도 없다.

그러면서 내가 숙지하고 있는 내용들은 경제성장, 경쟁, 효율, 반공, 안보, 국가경쟁력 등 객관적 진리라는 포장지로 포장된 지배 세력의 세계관 또는 지배 이념들이라고 지적한다. 학창 시절을 떠올려보면 구구절절 맞는 얘기다. 나는 군대에서 그 끝없는 부조리함을 겪기 전까지 어른들한테 대들 줄 모르고 열심히 하면 성공할 거라고 생각하던 사람이었다. 반항이나 저항 등은 생각도 해보지 못했다. 나로서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강의 때 들었던 선생님의 말이 생각난다. "내 생각은 어떻게 내 생각이 되었나?"끊임없이 되새겨봐야 할 문장이다.

3부 존재와 의식 사이의 함정들

3부의 내용은 '내 의식이 내 존재를 배반한다'다.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는 계급, 분단, 지역, 젠더, 생태 등 다양하다. 나는 그 중 파레토 법칙을 인용한 부분에 흥미를 느꼈다. 80:20 법칙으로 친숙한 파레토 법칙은 현실에서는 적용되지 않는다. 80에 속하는 사람들 중 대다수가 자신들이 20에 속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20vs80의 사회 - 출처 민음사

 

나는 '서초동 집회'를 보면서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검찰개혁이라는 문구에는 절대적으로 동의하지만(나는 검찰로부터 수사권을 완전히 빼앗아야 한다고 보는 입장이다.) 조국 수호라는 문구에는 전혀 공감이 가지 않았다. 도대체 누가 누구를 지킨다는 말인가. 애초 조국 전 법무부장관은 권력자다. 표현을 빌리면 '자산 59억의 사회주의자'다. 무려 자본주의 사회에서 말이다. 표현만으로 모순인데 그런 걸 떠나서 보더라도 서초동에는 그렇게 많은 사람이 모일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였는가에 대해서 고민해봤다. 내 나름의 답을 찾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혹자는 노무현 전 대통령 트라우마 혹은 열혈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이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나는 사람들이 자신들을 조 전 장관과 동화했기 때문이라고 봤다. 수구 한국당에 비해 '상대적으로' 진보적 성격을 띤 민주당 지지자기에 자신들도 그렇게 될 수 있을 거라고 봤다는 얘기다.

물론 조 전 장관의 죄가 크다고는 보지 않는다. 검찰의 기소 내용 대부분은 억지로 가득 차있고, 끽해야 자녀 스펙과 관련해 사문서 위조와 업무방해 등 벌금형이나 내려질 정도다. 하지만 그의 위선을 나는 용서할 수 없다. 그는 적(검찰)을 잘 만났을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조 전 장관 얘기를 길게 하는 이유는 앞서 언급한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고 말하고 싶어서다. 

나는 '조국 수호'라는 구호가 래디컬이라고 본다. 물론 사상적 래디컬은 절대 아니고, 인물적 래디컬일 거다. 그리고 그 래디컬은 자신의 의식을 자신의 존재에 맞춰 형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3부에서는 이런 우리에게 내 생각이 어떻게 내 생각이 되었는지를 다시 한 번 고민하게 만든다.

4부 난민, 은행장 되다

난민과 은행장은 앞서 언급했으니 이해할 것이라 생각한다. 4부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이야기다. 난민이 사회적 약자라는 건 당연하다. 장발장은행 또한 마찬가지다. 벌금형을 받고 내지 못하면 감옥에 간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 있다. 죄질이 나쁘지 않은, 오히려 도와주어야 마땅한 범죄들이 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베르테르가 언급했던 것처럼 자신과 자기 가족을 눈앞에 닥친 굶주림으로부터 구출하기 위해 도둑질을 한 경우가 그렇다. 요즘 시대에 밥 굶는 사람이 어딨어?"와 같은 말은 하지 말아주시길. 송파 세 모녀 자살사건이 고작 1년 전이다. 

이것만 문제는 아니다. 총액벌금제는 기본적으로 모순을 품는다. 물론 법은 엄정해야 한다. 물건을 훔치면 벌을 받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이 벌이 모두에게 같은 고통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나는 그래도 혼자 살고, 적은 돈이지만 월급을 받는다. 나보고 물건을 훔쳤으니 300만 원을 내라고 하면 좀 힘들겠지만, 낼 수는 있다. 하지만 자녀가 셋인 한부모라면? 직장마저 변변치 못해 돈을 모으긴커녕 코로나로 일자리도 잃었는데 300만 원을 내라고 하면?

당장 돈 없는 나와 비교해도 무게가 다르게 느껴지는데 부자와 가난한 이들에게 같은 금액의 벌금을 매기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드는가? 혹자는 법이 평등해야 하고 저것이 객관적 평등이라 한다. 좋다. 그러면 환형유치의 금액은 왜 다른가? 왜 돈 없는 자들은 하루 노역으로 탕감할 수 있는 금액이 10만 원이고 누구는 하루 5억 원인가? 정말 이게 평등한가? 

4부에서는 빈곤과 난민을 비롯해 우리의 무관심 속에 잊혀진 구성원들을 돌아보자고 얘기한다. 나는 동 에우데르 카마라 대주교의 말이라는 이 문장이 참 마음에 든다.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고 말했을 때 사람들은 나를 성자라고 불렀다. 그러나 가난을 만드는 구조를 바꾸어야 한다고 말하자, 사람들은 나를 빨갱이라고 불렀다."

그렇다. 결국 4부는 최소한의 인간 존엄성 만큼은 지켜주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을 통해 사회적 연대를 강조하고 있다. 그 나라의 인권 현실을 알고자 하면 이주노동자와 감옥에 갇힌 재소자들을 보라고 한다. 나는 내가 부자는 되지 못하더라도 먹을 게 없어서 음식을 훔치는 사람이 없었으면 한다. 가난을 바라보는 홍세화 선생님의 시각이 내 날것의 시각을 보다 구체화해줬다.


생각정리

결: 거칢에 대하여>에서는 제목은 언급되지 않고 상징 폭력이라는 소제목 하에 내용만 다루어지는 부르디외의 책 <구별짓기>는 나를 불평등 문제에 관심 갖게 해 준 첫 책이다. 나는 세대론도 어느 정도 합리적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으로 계급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은 노력할 수 있는지를 묻지 않는다. 남들과 같이 노력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 중학교 때 같은 반 친구놈 한 명은 홀아버지 밑에서 자랐는데,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였다. 우리 반 1등은 종합병원 원장선생님 아들이었다. 1등인 그 아이가 홀아버지 밑에서 자란 아이에게 자신은 우유를 먹지 않는다며 배급된 우유를 항상 주던 장면을 기억한다.

이런 장면 뿐만 아니라 책을 읽으며 아팠던 기억들이 다시금 떠올랐다. 기본적으로 이 사회가 평등하고 노력으로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 요즘 세상에 그런 사람들이 어딨냐는 사람들이 꼭 읽어봤으면 한다. '월세 구속, 전세 석방의 논리'를 아는가? 링크를 첨부했으니 이 칼럼도 꼭 읽어보시길. 


알아두면 좋은 관련 지식

장발장은행은 벌금형을 선고 받고도 낼 돈이 없어 교도소에 갇히는 사람들에게 무담보, 무이자로 돈을 빌려주는 은행이다. 신청한다고 다 빌려주지는 않고, 심사를 통해 대출해준다. 필요한 서류들은 장발장은행 홈페이지에 '대출신청' 카테고리에 안내되어있으니 참고하면 된다. 링크를 걸어두었으니 필요하신 분은 참고하시길.

남민전 사건은 1979년 유신 말기에 있었던 일이다. 대표적인 공안 사건. 남민전의 풀네임은 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 남민전 사건과 관련해서는 후에 역사·인물 카테고리에서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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